혹시 나도 ‘술 마시면 안 되는 사람’?
모두가 술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샴페인 잔을 기울이기 전, 혹은 퇴근길 맥주 한 캔에 손이 가기 전에 잠시 멈춰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알코올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신체와 정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조건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음주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 그리고 왜 술을 마시면 안되는 사람인지 명확히 짚어보려 한다. 이는 무작정 금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건강, 나아가 생명까지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간 질환(지방간, 바이러스성 간염, 간경변, 간암)
이미 몸에 적신호가 켜졌다면, 술은 그 불길을 더 키우는 기름과 같다. 간 질환은 대표적인 예다. 알코올은 간세포에 직접적인 독성을 가하며, 알코올성 지방간은 과음자의 80-90%에게서 나타나는 초기 단계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마신다면 알코올성 간염, 심지어 비가역적인 간경변으로 진행된다. 간경변 환자가 음주를 지속하면 5년 생존율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양, 짧은 기간에도 간 질환이 발생하기 쉬우니 여성 또한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 목록에 민감해야 한다.1참고문헌-Alcohol-Associated Liver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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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 질환(급성 췌장염, 만성 췌장염, 췌장암)
췌장 역시 알코올에 취약한 장기다. 알코올은 급성 및 만성 췌장염의 주범이며, 췌장염 환자의 음주 지속은 재발과 만성 진행, 심지어 췌장암 위험까지 높인다. 특히 알코올성 급성 췌장염의 재발률이 46%에 달한다는 점은, 단 한 번의 발병으로도 술과의 영원한 이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을 시사한다.2참고문헌- Pancreatitis & Alcohol: Alcohol’s Effect on the Pancreas
위장 질환(소화불량, 위염, 소화성 궤양, 위암)
위장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알코올은 위 점막을 직접 자극하고 위산 분비를 늘려 위염이나 위궤양을 악화 시킨다. 특히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와 함께 마시면 위장관 출혈 위험이 폭증 한다. 술과 NSAIDs의 조합은 위 점막에 가하는 이중 공격과 같아, 통증 때문에 약을 먹으면서 술잔을 드는 행위는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3참고문헌- Alcohol’s Role in Gastrointestinal Tract Disorders
혈관 질환(관상동맥 질환, 뇌혈관 질환, 말초 혈관 질환, 동맥경화증)
심장과 혈관 건강에 대한 경고등도 명확하다. 만성적인 과음은 고혈압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남성은 하루 3잔, 여성은 하루 2잔 이상 꾸준히 마시면 고혈압 위험이 크게 늘어난다. 놀라운 건 아시아 남성의 경우 소량 음주로도 고혈압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또한, 과도한 알코올은 심장 근육을 손상시켜 알코올성 심근병증을 유발하고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지어 남성은 하루 1-2잔의 음주로도 심방세동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휴일 심장 증후군'(폭음 후 부정맥)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규칙적인 보통 수준의 음주조차 심장 박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4참고문헌- Alcohol’s Effects on the Cardiovascular System
뇌 질환(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뇌 건강도 예외는 아니다. 과음은 허혈성 및 출혈성 뇌졸중 위험을 모두 높인다. 알코올이 혈압, 혈액 응고, 심장 박동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량의 음주도 출혈성 뇌졸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의 범위를 넓힌다.5참고문헌- Wernicke-Korsakoff Syndrome
암 질환(대장암, 구강암, 식도암, 간암)
알코올이 1군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강력한 경고다.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DNA를 손상시켜 구강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을 유발한다. 암 위험에 있어서는 ‘안전한’ 음주량 자체가 없다. 특히 ALDH2 효소 결핍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명 ‘아시안 플러시’)은 특정 암 발생 위험이 훨씬 높다.6참고문헌- Alcohol and Cancer
정신 질환(우울증, 불안증)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술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코올은 우울제이며,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스트레스나 불안을 술로 해소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만성적인 과음은 뇌 용적 감소와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하여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질 수 있으며, ‘블랙아웃'(필름 끊김)은 알코올로 인한 뇌 손상의 명확한 신호탄이다.7참고문헌- Alcohol Use Disorder and Depressive Disorders
당뇨 질환
당뇨병 환자에게 알코올은 위험한 혈당 변동을, 특히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 증상과 저혈당 증상이 유사하여, 적절한 치료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통풍 환자는 알코올, 특히 맥주나 증류주를 마시면 요산 수치가 올라가 통풍 발작 위험이 커진다. 만성적인 알코올 사용은 빈혈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피로감을 술로 해소하려다 오히려 빈혈과 전반적인 건강을 악화 시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질환이 있는 사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 목록의 상위에 자리한다.8참고문헌- Alcohol and Diabetes
술과 함께 먹으면 안되는 약물
약 복용 중이라면 술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 이유와 위험성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약물은 간에서 알코올과 같은 대사 경로를 공유하거나, 중추신경계에 함께 작용하여 부작용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타이레놀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과 술을 함께 마시면 심각한 간 손상 위험이 있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는 위장관 출혈 위험을 높인다. 수면제, 진정제, 마취제와 알코올은 중추신경 억제 효과를 강화하여 호흡 억제, 심지어 치명적인 과다 복용을 유발할 수 있다. 항우울제와 함께 마시면 진정 효과가 커지고 일부 약물은 위험한 상호작용(세로토닌 증후군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알코올 자체가 항우울제 효과를 상쇄시키기도 한다.
항생제
일부 항생제(메트로니다졸 등)는 술과 만나면 구토, 안면 홍조, 빠른 심박수 등을 유발하는 디설피람 유사 반응을 일으킨다.9참고문헌-Combining Antibiotics and Alcohol: Is It Safe?
고혈압 치료제(이뇨제, 항응고제, 심장약, 심혈관계 약물)
고혈압 치료제, 이뇨제, 항응고제, 심장약 등 심혈관계 약물은 알코올과 병용 시 과도한 혈압 강하, 출혈 위험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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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약물(무좀약, 항히스타민제, 고지혈증 약)
당뇨병 약물은 심각한 저혈당 위험을 높이고, 항히스타민제는 졸음과 운동 능력 저하를 심화시켜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고지혈증약이나 무좀약 역시 간에서 대사 되므로 술과 함께 복용 시 간 손상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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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복용 중 최고 혈중 농도에 도달하는 시점에 음주 하면 부작용 위험이 급증하며, 설령 동시에 마시지 않아도 체내에 잔류하는 알코올이 약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불확실하다면 약 복용 중에는 무조건 술을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약을 먹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다.
술을 마시면 안되는 사람
일반적인 건강 상태를 가진 성인 남성에게도 알코올은 위험할 수 있지만, 특정 대상에게는 그 위험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임산부 및 임신 계획 여성
알코올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는 기형 유발 물질이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 알코올 증후군(FASD)을 유발하여 신체적, 정신적 기형 및 발달 장애를 일으킨다. 임신 중 안전한 음주량은 없으며, 심지어 임신 전의 고위험 음주조차 거대아 출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임신을 시도 중이거나 가능성이 있다면, 완전한 금주가 필수다.10참고문헌- About Alcohol Use During Pregnancy
수유부
알코올은 모유로 이동하여 영아에게 노출된다. 영아의 미성숙한 간은 알코올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 발달, 수면, 수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모유 분비량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모유 수유 중이라면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며, 부득이하게 마셨다면 알코올이 체내에서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표준 잔당 최소 2-3시간) 기다린 후 수유해야 한다. 모유를 ‘짜서 버리는’ 행위가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성년자 (어린이 및 청소년)
청소년의 뇌는 여전히 발달 중이며, 특히 인지 기능과 관련된 영역이 민감하다. 알코올은 이러한 뇌 발달을 방해하여 장기적인 구조 및 기능 변화를 유발하고 학습, 기억, 의사 결정 능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성장호르몬 분비를 억제하여 성장 부진을 초래하고, 15세 이전의 조기 음주 시작은 성인이 되어 알코올 의존 가능성을 최대 4배까지 높인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것은 불법이며,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다.
알코올 사용 장애(중독) 병력자
알코올 사용 장애는 뇌 질환으로, 이전의 의존 경험은 재발에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소량의 알코올도 과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절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복적인 금단 증상 경험은 ‘킨들링’ 현상으로 인해 이후 금단 증상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과거 알코올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미래에도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다.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낮은 사람 (ALDH2 결핍)
동아시아인에게 흔하며, 알코올 대사 중 발생하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제대로 분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아시안 플러시’라 불리는 안면 홍조, 오심, 두통, 빠른 심박수 등의 불쾌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발암물질이므로,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술을 마시면 식도암 등 특정 암 발생 위험이 현저히 높아진다. 불편한 증상 때문에 중독률은 낮을 수 있지만, 증상을 참고 계속 마신다면 매우 치명적인 건강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당신의 몸이 알코올을 거부하는 신호를 보낸다면, 그 신호를 무시하고 술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다.